멍하니 텅 빈 길을 보던 나빛이 고장난 태블릿을 바닥으로 떨궜다. 무작정 길을 따라 뛰려다가 바쁘게 주변을 둘러봤다. 맨발로 뛰었다간 순식간에 들킨다. 풀숲과 도로에 무언가 있을 리가 없었다. 뒤를 돌아봤을 때, 화장실에 놓은 욕실화가 눈에 들어왔다. 곧장 신고 길을 밟아 달렸다.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달리고 있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잠에서 덜 깬 나빛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일단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걷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 전에 있던 곳과 다르게 한 눈에 현관문까지 보이고 원목 벽으로 된 원룸이었다. 일어나 둘러보기 위해 뻗은 나빛의 오른쪽 다리가 어떤 힘에 의해 뒤로 당겨졌다. 다리를 확인해보니 발목과 침대 기둥이 수갑으로 채워져 있었다. 나빛의 부스스한 얼굴이 당황으로...
버스에서 내린 나빛이 걸었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향했다. 위험해보이는 짓 하기. 사제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면 구원은 분명 자신을 과잉 보호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누워서 혹은 앉아있게 했다. 죽을 뻔한 위기에서도 구해줬다. 내가 다친다면 본인에게 피해라도 가는 것일까. 확실한건 구원은 자신을 위해 내려온 신의 사자 같은게 아니었다. 성당에...
버스에서 내린 나빛이 주위를 바쁘게 둘러보았다. 상가가 늘어진 시장 근처 길은 자동차와 사람으로 번잡했다. 사람 속을 제 발 가는대로 걷는건 오랜만이었다. 넋을 놓고 세상 돌아가는 광경을 구경하다가 길을 잃을 뻔 했다. 루카 사제가 멀리서 나빛을 불러 나빛도 정신을 차리고 뒤따랐다. 도착한 성당은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한가한 길가 언덕 위에 있었다. 주차...
사제가 왔다 간 후, 나빛의 마음에 작은 싹이 났다. 의심이 실어 나른 양분으로 싹은 점점 자라났다. 눈 앞을 가르고 내리던 무시무시한 낙뢰, 고목을 태우던 불길, 목사의 사무실 밖으로 점멸하던 빛과 몰아치던 굉음. 외출을 꺼리고 외부인을 경계하던, 십자가를 두려워하던 얼굴. 선과 악을 가른다면 어느 쪽일까. 달라진 나빛은 티가 났다. 평소와 달리 구원을 ...
처음 외부인이 찾아왔던 날 이후로 나빛은 집에서 쥐 죽은 듯이 지냈다. 마당도 잘 나가지 않았고 구원이 당부한 대로 누군가 찾아와도 대꾸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고 한 번 더 초인종이 울렸을 때도 나빛은 얼른 방으로 도망가 제 모습을 숨겼다. 그로부터 시간이 더 흐르고 한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빛은 안심했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돌담이 꽤 ...
낮은 돌담 밖으로 나온 나빛은 구원과 함께 쭉 뻗은 보도를 따라 걸었다. 돌담 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집은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조금 걷다보니 다른 주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가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외진 시골 마을이었다. 듬성듬성 보이는 주택 외에는 산과 강물 뿐이었다. 인적 없이 한가한 길가를 걷다보니 마음이 ...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빛이 잠시 낮잠을 자는 동안 구원이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갔다. 나빛이 짧은 잠에서 깨어났을 땐 침대 옆으로 구원이 편하게 앉아 태블릿PC를 보고 있었다. 나빛은 잠결에 따뜻한 체온을 찾아 파고들었다. 당연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포근해서 구원의 허리를 세게 끌어안았다. 한참을 잠이 덜 깬 채로 구원을 안고 있던 나빛이 몸을 돌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잃었던 나빛이 눈을 뜨자마자 보인건 처음 보는 높고 하얀 천장이었다. 덮고 있는 이불과 살갗에 닿는 침구의 촉감도 생경했다. 잠결에 주위를 둘러보니 커다란 창 밖으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멍하니 창 밖을 보던 나빛은 정신이 차차 돌아오면서 제가 어째서 이 곳에 있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상황을 인지한 나...
나빛이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나빛 옆에 붙어 다니기로 작정한 듯 남자는 다음 날 첫 예배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늘 그렇듯 기척도 없이 어느새 나빛의 옆 자리에 앉은 남자는 능청맞게 나빛에게 물었다. “ 이제 나갈 마음이 생겼어요? “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남자에게 익숙해진 나빛은 남자를 힐끔 보고 답했다. “ 원래 생각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
정신 없이 부축 당해 움직이던 나빛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제 방 침대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게 주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잠시 꿈을 꾼건가 싶었다. 까만 하늘을 가르고 내려온 낙뢰와 무섭게 타오르던 고목, 제 귀를 막아주던 체온도 전부 현실 같지 않았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고 일어나 창 밖을 내다 보았다. 한 건물 떨어진 곳에...
마무리 예배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나빛은 신도복을 벗고 취침복으로 갈아입었다. 도망을 치되 확실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간은 분명히 모두가 잠든 취침 시간을 노리는 쪽이 좋겠지. 나빛은 창문 커튼을 걷어 밖을 살폈다. 방의 층이 높아 창문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방문 앞으로 조용히 걸어간 나빛이 슬쩍 문을 열어보았다. 복도는 텅 비어 인적이 느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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